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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드라마 속 역사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속 고려의 기반을 다진 왕 광종

by JANE! 2022. 4. 26.

출처: SBS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공식 홈페이지

1. 광종의 생애

광종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아들로 태어나 제4대 고려의 국왕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광종의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925년경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광종은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본명은 왕소였습니다. 광종은 형인 정종과 마찬가지로 신명순성왕태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형과 달리 광종은 아들을 잃은 신주원부인 강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광종은 자신의 이복 여동생인 황보씨와 혼인하게 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이상한 혼인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서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황보씨와 결혼함으로써 든든한 세력을 형성한 광종은 형인 정종이 27세에 요절하자 왕위를 물려받고 고려의 4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즉위 후 광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노비안검법', '과거제' 등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공복, 즉 신하들이 조정에 나올 때 입을 옷을 제한함으로써 조정의 서열을 바로 세우기도 했습니다. 광종은 이렇듯 고려의 기틀을 잘 다지며 왕권을 강화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재위 후반부터는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광종의 칼날은 호족들 뿐만 아니라 왕족과 친인척에게도 가차 없었습니다. 자신의 조카들 역시 역모에 연루되자 곧바로 처형하였으며, 자신의 친아들인 태자조차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광종은 975년 여름날 사망하게 되었고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인 개성에 조성된 왕릉에 부인인 황보씨와 함께 안장되어있습니다.

2. 광종에 대한 평가

광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습니다. 일단 국가라고 부르기 힘들만큼 엉망이었던 고려 초기를 정리하고 정식 국가로 발돋움하게 했다는 점에서 광종은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호족과 왕족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는 점이 부정적인 평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족과 왕족의 숙청은 고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는 평가도 많습니다. 

3. 광종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

광종은 아버지인 태조가 고려의 건국과 안정을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혼인했던 것과 달리 세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광종의 황후는 대목왕후 황보씨로 광종의 이복 여동생이었습니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는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쁜 것으로 주로 묘사되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달라 대립한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5명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금슬이 아주 나쁘기만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광종은 혜종과 의화왕후 임씨 사이의 딸인 경화궁부인 임씨와 혜종이 왕위에 있을 때 혼인하였고, 궁인 출신의 현비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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